지난해 5월 어느 주말.
신랑이 집들이 겸 친한 형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하루 놀고 싶다고 요청해서 공식외박을 하루 해주었던 날.
언제 가도 좋은 덕적도에 트레킹을 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캠퍼들은 박배낭을 메고 선착장에서부터 올라와 비조봉을 거쳐 서포리로 내려가기도 하는 모양.
그러나 나는 완전히 등산 초짜이므로 밤새 무릎이 아플 걸 예상하고 숙소까지 잡고 왔으니
그들의 루트를 따르지는 못하고 서포리에서 비조봉까지 올라가는 등산로를 왕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박배낭은 지극히 간단모드로 침낭과 텐트만 챙겨 왔다.
다음 날 섬을 나가는 배가 3시에 있으므로 오전에 숙소 체크아웃 후 서포리 해변에서 잠깐 텐트를 치고 피크닉 모드를 즐길 요량이다.
숙소에 가방을 내려놓고 트레킹을 슬슬 나서본다. cu편의점 쪽에서 시작된 솔숲 데크길을 따라서 산책하듯 걷다가
운동장을 왼쪽에 끼고 돌아,
펜션을 지나쳐, 등산로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고 쭉쭉 올라간다.
오른편에 베이지색 건물을 두고 바로 올라가면 대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등장하는데,
응? 레알 산닭들이 나타났다.ㅎㅎ 자유롭게 나다니는 이 녀석들은 사람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위풍당당한 포스에 우습기도 하고 되려 쪼일까 봐 겁나기도ㅎㅎ
솔직히 비조봉 등산로에 대해서는 '조금 거친 산길' 정도로만 알고 왔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도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등산로는 초입에는 한들한들 산책하기 좋을 정도로 만만하다.
그래서 이 야트막한 비조봉에 이만한 길이면 금세 다 올라가겠네 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윽고 등장한 난코스... 경사가 꽤나 가파르고 돌이 박히지 않은 흙길도 있어서 미끄럽다.
경사가 어느 정도냐하면, 한눈에 지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살짝 어지러울 정도?
그러니까 우리는 보통 계단을 올라가거나, 앞에 지형들이 산재돼 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일 정도로 빠르게
'이걸 피해서 저걸 밟고 가면 되겠구나'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나.
그런데 이 등산로는 한 눈에 그게 판단이 안 돼서 머리가 복잡할 정도였다.
내 공간감각과 운동신경이 이렇게 별로였나...
기운 빠져하며 정신 없이 올라가다가 하산하는 중년 부부를 마주쳤는데 그들도 '이 길이 중상 이상의 난도라 쉽지 않은 길'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내려갈 때는 거의 엉덩이로 쓸고 내려가며 다치지만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
감투바위에서 만난 조망도. 연무가 짙게 껴서 가장 가까이의 흑도만 보이고, 문갑도는커녕 선갑도의 끄트머리만 보인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힘을 내서 다시 쭉쭉 올라갔다.
드디어 만난 비조봉!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가 있다. 비조봉으로 올라오는 여러 등산로들이 여기서 합쳐진다.
뿌연 안개 사이로 보이는 어느 작은 해변과 밧지름 해변.
오른편 저멀리로 서포리 해수욕장도 보인다.
놀라웠던 점은 박배낭을 메고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등장한 한 무리의 청년들!
그들이 거쳐온 거리가 내가 올라온 것보다 훨씬 멀었을 텐데 대단하다. 저 무거운 박배낭을 이고 지고 스틱과 등산화도 없이
(심지어 슬리퍼를 신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올라온 길로 하산할 거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부디 잘 내려갔기를.
서포리해수욕장을 우회해서 하산해 달라는 알림판.
이제 심호흡을 해보고 다시 내려가볼까. 비조봉 꼭대기를 찍었으니 조급하게 내려갈 필요는 없다. 천천히 안전하게.
인터넷으로 급하게 주문한 저렴한 등산화와 스틱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내려가다가 본 덩굴로 뒤덮인 폐가. 얼마나 긴 시간 사람이 살지 않은 걸까.
드디어 하산 완료.
서포리 해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날이 흐리고 스산했다.
그 캠퍼들은 마을 입구로 향하는 다른 루트로 빠졌는지 내려오는 길 내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맑게 개인 날씨, 전날과 180도 바뀐 화창함에 역시 섬 날씨는 변화무쌍하다는 걸 깨닫는다.
아침에 잠깐 산책하며 바라본 하늘에 마음까지 청량해진다.
지난밤 요양모드로 골골대며 보낸 나와 달리 용감무쌍하게 야영을 즐긴 이들은 철수 직전 여유롭게 햇빛 샤워를 즐긴다.
어제 봉우리 꼭대기에서 만났던 무리들도 저어기 한쪽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들의 열정과 체력이 부럽소...
나도 햇빛을 마음껏 즐기....려다가 해풍에 밀려오는 모래 어택에 텐트를 잠시나마 쳐본다.
그래도 가져온 게 아까우니 쳐야지.
그런데 치고나서 후회했다. 텐트 치느라 분명 추웠는데 금세 더워진 데다, 오랜만에 쳐서 플라이 방향도 잘 모르겠다.ㅎㅎ
땀 뻘뻘 흘리다가 기운 빠져서 텐트 안에서 노닥노닥 낮잠 한숨 자느라 사진은... 없다.
체크아웃 전에 숙소 모습을 남겼다. CU편의점 바로 위의 펜션이다. 1박에 6만 원으로 몇 년 전과 가격이 동일하다.
바닥도 따끈따끈하게 난방을 틀어주셨다. 나는 가져온 에어매트를 이불 사이에 깔아서 거의 침대 매트리스처럼 폭신폭신하게 만들어 누워 자서 맨바닥의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시설이 오래된 탓에 하수구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서 화장실 문을 내내 닫고 있었다.
게다가 방음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다른 숙박객과 동떨어진 방을 달라고 예약 전과 후로 부탁드렸는데도,
대각선 아래 아저씨 둘이 묵는 방을 주셔서 그들이 술에 곯아떨어진 이후에도 (코고는 소리에...)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산 귀마개가 그나마 신의 한 수...)
이런 단점들이 걸린다면 마을 내에 단층짜리 펜션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가격적인 메리트와 편의점 이용, 버스정류장 도보이용 등의 편의성을 때문에 주변에 숙박객이 없다면
다시 이 숙소에 머물 생각이 충분하다.
섬을 떠나는 날 하늘이 말끔히 개였다.
오늘이 어제였다면 좋으련만, 아쉽네.
아쉬움이 남았다면... 다음에 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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